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국 혐오/행태 (문단 편집) === 조선왕조 비방 === 특히, [[조선]] 비방이 눈에 띄는데 근대로 접어들어 사진 자료가 많이 남아있는 조선 후기의 사진들을 예시로 [[한국인]]은 미개하고 열등하다는 증거로 삼는다. 전근대 사회에서 목욕의 부재, 나아가 위생관념의 부재는 전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다. [[베르사유 궁]]이나 [[하이힐]]에 얽힌 유명한 야사들이 전하는 실상이 그렇듯이, 부정하거나 부끄럽게 여길 필요가 없는 보편적인 전근대상일 뿐이다. 근대적인 의미의 목욕 보급은 [[서유럽]] 기준으로도 200년도 안 지났다. 종종 [[구한말]] [[여성]]의 복식을 비난도 한다. 구한말에는 여성의 저고리 길이가 점점 짧아지더니 [[18세기]]에는 극단적으로 짧아져 아랫가슴을 노출하는 경우가 늘어났는데,[* 이유 없이 가슴을 노출하는 경우는 극빈층을 제외하면 없었다고 보면 좋다. 현대의 기준과는 다르게 가슴 노출은 동양에서 크게 문제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가슴보단 복부, 특히 [[배꼽]] 부분의 노출을 더 큰 수치로 여겼다고 한다.][* 아들을 낳을 경우 가슴을 노출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풍습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그게 관한 기록이나 증언이 남아 있어야 하지만 외국 [[언론]]에 사진과 함께 설명으로 붙은 글 외에는 다른 증거가 하나도 없어서 사실상 완전히 부정되고 있다. 저런 풍습이 있었다고 말하는 쪽은 전부 저 외국 기사를 그대로 옮기는 것일 뿐이고 실제로 예전에 그런 풍습이 있었다는 구전조차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 구한말에 찍힌 가슴을 노출한 사진은 대부분이 스튜디오에서 연출된 사진이고 나머지 일부는 노동이나 생활 현장에서 노출되는 정도뿐이다. [[6.25 전쟁]] 당시에 피난민 등 중에 이런 사진이 찍힌 경우가 몇 장 있다. 가슴 노출이 출산 경험을 가진 여성에게는 수치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가슴노출 자체는 조선시대에도 금기가 맞았다. 다만 아이에게 수유를 하기 위한 가슴노출은 전혀 수치스러운 게 아니었으며, 이를 성적으로 보는 행위 자체가 수치스러운 행위였다. 마치 [[누드비치]]에서 타인의 누드를 성적으로 보는 이가 문제고, 누드로 일광욕을 즐기는 이가 정상인 것처럼.] 이를 미개함의 증거로 여기고 공격한다. [[코르셋]]이나 [[전족]], 할례, 하이힐과 같이 극단적으로 신체를 훼손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특정 신체부위를 드러낸다는 것 자체로는 미개함의 증거로 여겨지긴 힘들다. 이러한 시각은 다분히 성적인 부분을 드러낸다는 당혹감에서 나오지만, 실제로 몸의 '성적인 부위'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잦다. 대표적으로 일본은 [[기모노]]로 가린 목 뒤, 서유럽의 경우 절대 드러나지 않았던 발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가슴에 성적인 의미가 크게 부여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높은 확률이 국까들이 하악대는 동시대 일본이라고 전국민이 화려한 옷 빼입고 다녔는가? 그렇지 않다. 메이지 유신 전후의 일본을 찍은 사진을 보면 조선 왕조의 서민들과 다를 바 없이 헐벗은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일본 서민들을 찍은 사진을 수두룩 빽빽하게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의 관리의 봉급이 거의 없던 점이 부정부패를 필연적으로 불렀다면서 조선을 미개하다고 발언한다. [[송나라]] 정도를 제외하면 중세에는 체계적인 제도를 바탕으로 관리들에게 충분한 봉급을 줄 수 있었던 국가는 드물었다. 절대 다수의 국가는 관리의 봉급을 비제도적인 수단으로 풀었다. 심지어, 근대의 19세기 구미 열강들도 고질적인 [[관료제]]의 부정부패 문제가 있었다. '''심지어 식민제국 시절의 [[영국]]군도 군대 장교 계급을 돈으로 사고 팔았을 정도다.''' [[조선]]말기의 [[세도정치]]의 폐단이나 후기의 [[유교]] 교조화 문제 등만으로 조선 전체가 미개하고 유교탈레반이라는 호칭으로 야만스러운 존재이자 무능한 존재로 매도한다. 특히 근본적으로 조선에 하는 이들의 비하는 대개 일본의 식민지배가 정당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형태에, 조선이 있었고 일본이 식민지 지배로 근대화를 해주고 일깨워주었다는 식의 전개를 기반으로 한다.[* 이쯤 가면 식근론보다도 더 미친 시혜론 수준. 식민지 근대화론의 거두이자 2018년 이후에는 식민사관학자로 전향한 이영훈 교수도 이런 주장은 안 한다.오히려 이영훈 교수는 대한민국 이야기에서 일제의 식민지배를 '''모순으로 가득 찬''' '''해체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대부분 조선시대사를 아예 몰라서 단순하게 조선후기의 모순만으로 단순 공식화해 평가한다. 이는 정규 교육 과정의 한계에서 유래한 것일 수 있다. 조선사는 세도정치기를 시작으로 동학농민운동 등의 혼란 등을 거쳐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을사늑약으로 인한 몰락과정을 그리는데 그 과정에서 세도정치기 이후 제도를 정비하고 근대화를 위한 노력은 짤막한 서술로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나무위키에서도 마찬가지로 조선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서술기조가 압도적. 이외에도 [[세종대왕]]을 비난하기도 하는데, [[한글]]을 [[파스파 문자]]에서 따온 미개한 문자라고 왜곡하고, 모든 행태가 쓰레기라고 비난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한국어의 문자로 가타카나나 히라가나를 채택해야 한다고 한다. [[알렉산더 보빈]]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가타카나가 [[구결]]의 영향을 받았다. 히라가나는 그 자체가 중국 한자의 초서체에서 유래했다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노비종모법]]을 들어 자국민을 노비화, 노예화 한 것은 조선이 유일하다는 식으로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노비종모법이 세종 시대에 갑툭튀 한것도 아니었고, 노비 세습이 조선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전근대는 자국민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하다는 측면에서 타당한 것도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